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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고려인과 체첸인의 가슴 뭉클한 인연: 60년의 시간도 지우지 못한 따뜻한 기억

by NomadAndy 2024. 12. 24.

2001년, 러시아 북카프카스 지역에서 한 민간인 버스가 체첸 반군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총을 든 반군들이 승객들을 위협하며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반군들이 인질로 잡은 승객 중 일부에게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그들만 안전하게 하차시킨 것입니다. 이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고려인들이었습니다.체첸 반군이 고려인들에게만 따뜻했던 이유는 60년 전 두 민족이 맺었던 가슴 뭉클한 인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37년: 고려인의 강제 이주와 생존의 역사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일본 제국의 만주 진출을 우려하며 연해주에 거주하던 약 18만 명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준비 없이 열차에 실린 고려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동하며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착지는 황량한 카자흐스탄 벌판 한가운데였고, 그곳은 집도 음식도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그러나 고려인들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맨손으로 토굴을 파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벼와 채소 씨앗을 뿌리며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소금기가 많은 척박한 땅에서도 끈질긴 노력 끝에 벼농사를 성공시켰고, 야생 채소를 캐어 먹으며 이를 상품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가던 중, 또 다른 비극의 민족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체첸인들이었습니다.

1942년: 체첸인의 강제 이주와 고려인의 도움

1942년, 스탈린은 체첸인들이 나치 독일과 내통할 가능성을 우려해 대규모 강제 이주를 단행했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체첸인들이 혹한 속에서 화물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졌고, 도착 전 이미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체첸인들의 모습은 7년 전 고려인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이를 본 고려인들은 망설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체첸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며, 농사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체첸인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진심 어린 감사로 화답했고, 두 민족은 서로 의지하며 10년간 함께 살아갔습니다.

깊어진 유대와 새로운 시작

1956년, 후르시초프 집권 이후 강제 이주민들의 귀환이 허용되자 체첸인들은 고려인들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상당수의 고려인들이 카프카스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도 농업 혁신을 이루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재배한 수박은 러시아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습니다.그러나 1994년 체첸 독립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고려인이 다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체첸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고려인들에 대한 감사와 따뜻한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2001년 버스 납치 사건: 잊지 못할 은혜

2001년에 발생한 버스 납치 사건은 두 민족 간의 특별한 유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체첸 반군들이 고려인 승객들에게 특별히 예우를 표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조상들이 받았던 은혜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60여 년 전 황량한 카자흐스탄 벌판에서 시작된 두 민족의 인연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인간애와 연대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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